영화 시작 10분 전 버스에서 겨우 내려 극장 건물로 뛰어가니 마침 엘리베이터가 열리길래 얼른 탔다. 좋은 타이밍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찰나 같이 엘리베이터를 탄 한 남자가 뭐라고 말을 걸었다. 음악을 듣고 있어서 음악을 끈 후 다시 되물으니 " 영화보러 가세요? " 라고 묻는 것이었다. 그래서 대답한 후 다시 바라보는 데 마스크도 턱에 내린 상태로 말을 걸고 있었다. 거기에 상의는 나온 배에 배꼽위로 말려나간 상태. "저는 여기 본토 토박이에요. 경상도에서 오셨나봐요?" 난데없이 이런 맥락없는 말을 하는 걸 들으니 싸한 기운이 느껴졌다. 문이 열리자마자 빠른 걸음으로 걸어서 거리를 벌리고 같은 영화 보는 건 아니겠지 설마하고 잠시 후 극장에 들어갔는데 같은 상영관이었다.
영화가 시작되고 빈 자리가 많음에도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맨 첫 자리에 앉아 영화를 보다가 화장실을 가려는지 일어난 뒤 관객들을 향해 양 팔을 벌려 자신을 봐달라는 듯 계속 흔들었다. 스크린이 위쪽에 있어 천만 다행이었다. 화장실에 가는 계단을 걸어가면서도 그는 한손을 들고 계속 호응을 요구했다. 뭔가 조마조마한 분위기가 이어졌지만 다행히 괴성을 지르거나 하진 않았다. 아니면 극장 사운드가 워낙 크고 원채 음악이 크게 나오던 영화라 잘 안들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영화가 끝난 뒤 나갈때 다시 한번 앉은 자리에서 뒤돌아 관객들을 바라보고 양팔을 흔들고 비상구로 퇴장할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살면서 여러 극장 빌런을 봤지만 손 인사 빌런은 난생 처음봤다.
'잡문집 > 月' 카테고리의 다른 글
2월 18일 금요일 (0) | 2022.02.19 |
---|---|
2월 17일 목요일 (0) | 2022.02.17 |
2월 15일 화요일 (0) | 2022.02.15 |
2월 14일 월요일 (0) | 2022.02.14 |
2월 13일 일요일 (0) | 2022.02.13 |